JINAILIME
<English version of this writing below>
이미정, -화
송진아
“꺾여버린 신체 의지의 일부들. 절단되어진 신체 의지는 내가 처한 환경 안에 나 자신이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사라진 나의 그것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하는 듯, 순간순간 일렁거리며 나의 온전함을 갈구하게 만든다.
나는 오늘도 애써 그것을 잠재운다.”
2022년 2월에 진행되었던 ’-화‘ 퍼포먼스에 대한 리뷰를 2023년 10월에 작성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20개월 전, 이미정 작가는 ‘-화‘를 통해 주체의 사물-화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퍼포먼스 스틸컷1
여기에서 주체란 인간 주체를 말하는 것 같다.
스스로의 의지가 분명히 발휘될 수 있는 오롯한 하나의 주체로서의 인간, 그리고 그 물리적인 신체.
퍼포머는 플로어에 잠자코 서서 스스로의 의지로는 다만 바닥을 지탱하여 수직으로 서있는 힘만을 자아내고 있다. 그래서 그의 몸은 마치 결연한 주체인 듯 혹은 결연하고 말고 할 주체가 아예 없는 사물인 듯해 보이기도 한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오로지 작가의 판단하에 그의 몸에는 각목이 곳곳에 설치된다. 여기에서 그는 오롯한 주체이면서도 결국 타의에 의한 파편적인 물질과 끊임없이 균형을 지탱하는 수동적인 객체로 보인다. 표면적으로 그의 주체가 퍼포머로서의 역할을 수행을 하고 있는 모종의 부품으로서의 신체로 존재하고 있음에 더 힘이 실리는 부분이다.
그러나 작가는 퍼포먼스의 모든 과정에 퍼포머의 능동적인 기제가 작동되고 있음을 역설한다. 가만히 서서 타의로 인해 수시로 바뀌는 몸의 균형점을 탐색하도록 유도됨에 순응하는 그의 의지, 그리고 그 모든 균형점에서 어떤 부분들이 흔들리고 있는지 판단하고 있는 그의 신체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퍼포머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그의 주체.
그렇다면 이 퍼포먼스에서 ‘사물’이란 아마도 이런 능동적인 기제가 전혀 작동될 수 없는 어떠한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겠다. 바닥에 흩뜨려진 각기 다른 길이의 각목들은 작가의 손을 타지 않으면 그 어떤 역할도 해낼 수 없다. 한마디로 각목, 그의 의지로는 어떤 주체적 행위도 해낼 수 없다.
반면에 플로어 위에서 가장 주체 다운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퍼포머의 신체는 겉으로 드러나는 능동적인 주체성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이런 ‘사물’의 속성에 이미 근접한 상태이면서도, 작가에 의해 더욱이 사물의 속성에 가까워진 상태로 유도된다.
한편 관객은 이러한 ‘작가’, ‘퍼포머’, ‘각목’으로 이루어진 삼중 구조 안에서, 플로어 안을 때때로 오가는 작가의 간헐적인 수행성보다, 비교적 플로어 안에 고정되어 있는 퍼포머와 각목 간의 관계에서 오는 수행성에 더욱이 초점을 맞추게 된다.
퍼포먼스 스틸컷2
가로수 버팀목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폭이 좁고 기다란 각목의 물리적 형태를 본다. 작가가 진즉 퍼포머의 신체에 어느 정도의 균형을 잡아서 끼워 맞추지 않으면, 각목들은 퍼포머의 신체가 그와의 균형점을 찾기도 이전에 쉽사리 바닥으로 떨궈지고 만다. 때문에 이 지점에서는 퍼포머의 수행을 위한 작가의 주체성 개입이 어느 정도 요구된다.
작가의 섬세한 ‘각목 끼워 맞추기’ 손길이 끝나면 퍼포머의 능동적인 기제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발현되기 시작한다. 마치 각목과 같은, 수동적이면서도 단단한 사물에 가깝게 보였던 그의 몸 곳곳에서 미묘한 떨림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각목과 닿아 있는 그의 모든 신체 일부들이 가볍게 진동하더니 이내 조금씩 눈에 보일 정도로 흔들거리기 시작한다.
“…퍼포머의 모습은 흡사 체벌이나 고문을 당하는 것 같지만 퍼포머에게 부여된 임무는 없다. 퍼포머의 의지가 있는 한 오브젝티파이드 퍼포먼스(objectified performance)는 지속되지만 퍼포머의 육체적 떨림이 최종적인 거부를 뜻할 때 비로소 퍼포머가 주체로 돌아오며 사물과 분리된다…”
<이미정 작가 노트 中>
“쾅! 콰앙-!!”
결국 각목 몇 개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만다. 작가가 균형점을 조금 더 잡은 상태로 끼워 넣었다면 그가 더 버틸 수 있었을까? 퍼포머는 얼마만큼 그의 의지를 활용해 각목을 붙들고 있었던 걸까? 순간적인 질문들이 잠시 파생된다. 그러나 작가가 다시 각목들을 그의 몸에 재배치하면서, 퍼포먼스는 계속 이어진다.
퍼포먼스 스틸컷3
각기 다른 길이의 각목들은 수시로 퍼포머의 몸에 재배치되면서 때로는 눈에 띌 정도로 그가 균형을 잡기 힘들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가 균형을 따로 잡을 필요조차 없이 편안해 보이기도 했다. 후자에서는 그의 주체가 사물화에 얼핏 성공하는듯해 보이기도 했으나, 그 사이에도 그의 몸에서는 미묘한 떨림이 존재했다. 이처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관객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퍼포머의 주체성은 그가 완전히 사물화를 포기하면서 완연히 드러난다.
“쾅! 콰쾅! 쾅-!!”
퍼포머는 각목들과의 균형잡기를 포기한 채 순식간 플로어 밖을 나가고, 퍼포먼스는 종료된다. 분명히 존재하였던 작가와 퍼포머 간의 위계도 한순간에 무너지는 지점이었다. 관객으로서 예상치 못했던 전개에 조금 충격적이기도 했다.
퍼포먼스가 끝난 후 20개월이 흐른 후에 리뷰를 쓰는 지금, 나는 그때 퍼포머가 한순간 사물화를 포기하고 원래 있던 본연의 주체성을 드러내는 순간을 떠올리며 왠지 모를 질투와 희열을 느낀다.
그는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던 동안에는 분명 ‘-화’에 끊임없이 도달하고자 노력하는 작가의 객체였으나, 그 모든 균형점을 내려놓고 플로어 밖으로 나가는 순간에 그는, 작가의 퍼포머가 아닌 그 자신의 주체임이 틀림없었다. 사실 퍼포먼스 자체는 때때로 존재하는 관계적 상황에서의 주체의 객체화를 말하고, 퍼포먼스는 기실 그 객체라고 보이는 퍼포머의 주체에 의해서만 지속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 같았다. 퍼포머의 주체는 본 퍼포먼스의 ‘실-주체’인 작가에 의해서, 사물화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객체의 자리에 위치시키고 있지만, 완전한 객체 되기는 결국 그의 물리적 한계와 신체의 피로함에 의해 영원히 지속될 수 없고 마는 것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꺾여버린 신체 의지의 일부를 생각해 본다. 신체의 물리적 한계는 또한 감정적인 탈진 또한 포함하는 것이다. 이러한 극도의 피로함 속에서도 나의 주체는 때로 어떠한 관계적 맥락 안에서, 실주체가 던진 ‘객체/사물-화’ 과제를 영원히 수행하기 위해, 나의 신체 의지의 일부들을 꺾어버리고, 절단시켜버린다. 이제 나의 정신과 신체는 꺾여버린 나의 주체의 일부 덕분에, 너무 큰 고통 없이 ‘-화’되기에 성공하는 듯해 보인다. 고장 난 브레이크로 달리고 있는 고속 열차처럼, 이 퍼포먼스는 보이지 않는 끝을 향해서 점점 더 과속할 것이고 그로 인해 과열될 것이다. 나는 과연 이 맥락안에서 나의 주체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인가? 나의 ‘-화’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아니면, 나는 이러한 질문하기 자체를 그만둠으로써 또 하나의 신체 의지의 일부를 절단시켜야만 ‘-화’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딱히 다른 방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본 퍼포먼스는 공연을 몇 차례 더 앞두고, 퍼포머가 몸에 무리를 느껴 중도 하차함으로써 조기 종연되었다.
<Translated by myself>
Meejeong LEE, objectified performance, ‘-hwa’.
Jina Song
"Part of the broken will of the body. The amputated ‘physical will’ helps me settle myself in my environment a little less painfully.
But the part of me that is gone still seems to be there, flickering from moment to moment, longing for my wholeness.
Today, I’m struggling to silence it again."
In October 2023, I am writing a review of the performance ‘-hwa/化' that took place in February 2022.
About 20 months ago, Meejeong LEE talked about the objectification of the subject through the objectified performance, ‘-hwa'.
Performance Still 1
The subject here seems to be the human subject.
A human being, and its physical body, as a singular entity capable of clearly exercising its own will.
The performer stands silently on the floor, generating only the force of his own will to hold himself upright by supporting the floor. As a result, his body appears as if he is a determined subject, or as if he is an object with no subject at all. After some time, only at the discretion of the artist, a few wooden bars are installed on his body. Here, he appears to be the sole subject, but ultimately a passive object that is constantly in balance with the fragmentary material of others. This is made even more powerful by the fact that on the surface, his body exists as a part of some kind, that performs the role of a performer.
However, the artist emphasizes that the performer's active mechanisms are at work throughout the performance. ‘His willingness’ to stand still and comply with the invitation to explore the ever-changing balance points of his body, ‘his body’ judging which parts of it are shifting, and ‘his subject’ performing his role as a performer through all of this.
The ‘object’ in this performance, then, probably refers to a state in which these active mechanisms cannot function at all. The various lengths of wooden bars scattered on the floor cannot play any role without the artist's hand. In short, the wooden bar is incapable of performing any act of its own volition.
On the other hand, the performer's body, which is the most subjective on the floor, is already close to the properties of the ‘object' in that it has little apparent active subjectivity, but it is induced by the artist to be even closer to the properties of the object.
Meanwhile, within this triad of ‘artist', ‘performer', and ‘wooden bar', the audience focuses more on the performativity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performer and the bar, which are relatively fixed on the floor, than on the intermittent performativity of the artist, who occasionally moves around the floor.
Performance Still 2
Let's look at the physical form of the narrow, elongated wooden bars, which were inspired by the braces of a tree. Unless the artist balances and fits into the performer's body to some degree, they can easily fall to the ground before the performer's body can find a balance with them. This point requires a certain amount of intervention of the artist's agency in the performer's performance.
After the artist's delicate ‘fitting of the joints', the performer's active mechanisms begin to emerge. A subtle tremor begins to be felt in his body, the body which had seemed like a passive, rigid object, like a piece of wood. All the parts of his body that are in contact with the wooden bar start to vibrate lightly, then gradually begin to shake visibly.
"...the appearance of the performer is akin to corporal punishment or torture, but there is no task assigned to the performer. The objectified performance lasts as long as the performer is willing, but only when the performer's physical trembling signals a final refusal does the performer return to the subject and separate from the object..."
<Excerpts from the artist’s note>
"Boom! Bang-!!"
Eventually, some of the pieces fall to the floor. Could he have held on if the artist had put them in with a little more balance? How much was the performer using his willpower to hold the pieces together? These questions are momentarily derived, but the performance continues as the artist rearranges the pieces on his body.
Performance Still 3
The wooden bars, of varying lengths, were repositioned several times on the performer's body, sometimes visibly making it difficult for him to balance, and other times he appeared to be relaxed, not even needing to balance. In the latter case, his subject seemed to succeed in objectification, but even in between, there was a subtle tremor in his body. In this way, the performer's subjectivity, which is often hidden from the viewer's eyes unless one looks closely, is fully revealed when he completely abandons the objectification.
"Boom! Bang! Bang!! Baaangg-!!"
The performer abandons the balancing act and quickly leaves the floor, ending the performance. It was a point where the hierarchy between the artist and the performer, which clearly existed, collapsed in an instant. As an audience, I was a bit shocked by this unexpected ending.
As I write this review, 20 months after the performance, I am filled with a mixture of jealousy and delight at the moment when the performer abandons objectification and reveals his true self.
While the performance was ongoing, he was clearly the artist's object, constantly striving to reach objectification, but the moment he dropped the balance and walked off the floor, he was unmistakably his own subject, not the artist's performer. In fact, the performance itself seemed to represent the objectification of the subject in the relational situation that sometimes exists, and that the performance can only be sustained by the subject of the performer, who seems to be the object. By the artist, who is the ‘real subject' of the performance, the subject of the performer puts himself in the position of the object, to be the object of the artist. However, due to physical limitations and physical fatigue, complete objectification cannot last forever.
At this point, I think of the parts of the body's will that are broken. The physical limitations of the body also include emotional exhaustion. Amid this extreme fatigue, my subject sometimes breaks and amputates parts of my bodily will, to carry out, within a certain relational context, the ‘objectification' task that the real subject has thrown at me, forever. My mind and body now seem to succeed in being objectified without too much pain, thanks to the broken parts of my subject. Like a high-speed train running on faulty brakes, this performance will speed up more and more towards an unseen end and will overheat in the process. Will I be able to reveal my subjectivity within this context? What awaits me at the end of my objectification, or am I only able to continue the objectification by severing another part of my body's will by ceasing to ask these questions?
...I can't really think of anything else.
*This performance was scheduled for several more performances but ended early due to the performer feeling unwell and having to withdraw.
<English version of this writing below>
오! 나의 원격 투어 #2:
사샤 발롱의 '사이버 웨프트 (서곡)'
송진아
캐나다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브리티시컬럼비아 주는 영토의 반 이상이 숲으로 덮인 곳이다. 이곳에는 1896년부터 옅은 갈색의 곱슬거리는 털을 가진 늑대처럼 보이는 괴물이 매해 아홉 차례씩 발견되곤 했는데, 꼭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숲에서만 발견되어, 이 괴물은 브리티시컬럼비아 나인 테일즈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이 괴물은 일단 사람들에게 목격이 되면, 쏜살같이 그 자리를 벗어났기 때문에 현재까지 아무런 사진도 남아있지 않은 데다가, 목격자들마다 이것을 발견한 위치가 전부 다 다르고 옅은 갈색의 곱슬거리는 털 외에는 이것의 생김새를 전혀 다르게 진술해 놓아서 그 형태와 성별마저 규정짓기 어려운 상태다. 때문에 이 존재에 대한 미스터리는 마치 신화 속 괴물처럼 사람들에게 구전되어왔다.
일 년에 정확히 아홉 번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고 또 그것을 본 모든 사람들은 이것이 늑대와 비슷해 보인다는 점, 그럼에도 늑대와는 전혀 다른 괴물에 가까웠다고 저마다 나름 비슷한 목격담을 늘어놓았는데, 여기서 그들 모두가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숲 근처 마을 주민이라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숲에 들어갈 때는, 늑대에 대한 일련의 주의사항을 다들 숙지하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숲에서 늑대를 발견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늑대에 대한 현실적인 경각심을 가지고 있고, 또 늑대가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 이것이 첫눈에 마치 늑대 같다고 여겨졌고, 그럼에도 늑대는 아니라고 결론지은 이유는 이 괴물이 늑대와는 다른 생김새를 가지고 있을지 언정, 그 행동과 자태가 늑대와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에 기여한다.
인간으로서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지 않은 존재와 맞닥뜨리는 일은, 그 자체로 무척 두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 존재가 만약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어떤 동물과 똑같은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두려움은 조금 덜어지는 것일까? 지난 10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이 괴물을 목격한 사람들의 진술을 토대로 그들의 사후 감정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그들이 이후 그 괴물에 대해 느꼈던 가장 압도적인 감정은 바로 ‘불편함’ 이었다. 사람들이 본래 생김새가 정상적인 늑대의 외형에서 아주 멀리 벗어난 이 늑대와 같은 괴물을 보고 두려움보다도 기분이 썩 좋지 않은 불편한 감정을 더 크게 느꼈다는 것이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나인 테일즈’는 과연 늑대일까? 훗날 우리가 정말 이 괴물을 늑대의 범주에 넣게 된다면, 바로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는 이 괴물은, ‘이상적이고 완벽한 이미지를 벗어난 기괴한 형태의 늑대’ 정도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사샤 발롱 (1996, 캐나다)의 신작 ‘사이버 웨프트(서곡)’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속해 있는 사회 전반의 영역에서 사회적 규범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모종의 실패를 맞닥뜨렸을 때 오는 거북한 감정들을 ‘실패한 퍼포먼스’를 통해 소환한다. 그중에서도 발롱은 ‘다양성의 결집’에 초점을 맞추는데, 그녀는 수공예적인 물질과 가상공간의 비물질, 부드러운 털실로 만들어진 의상과 딱딱한 철로 만들어진 소품, 자연에서 채집한 소리와 컴퓨터로 만들어낸 음악, 몸의 절대적 균형을 요하는 곡예와 무대 위에서 떨어지거나 넘어지는 우연한 움직임 등 여러 가지 대비적 요소들이 끊임없이 마찰을 일으키며 행해지는 퍼포먼스의 실패를 첨예하게 조장한다. 차갑고 축축한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보호장비 하나 없이 거의 맨몸으로 펼쳐지는 퍼포먼스의 아찔한 위험성에서 결론적으로 관객은 이 퍼포먼스가 정말 이상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된다.
그럼에도 관객의 시선을 계속 퍼포먼스에 잡아두게 하는 것은 바로 음악이다. 사이버 웨프트에서 가장 주요한 유도 장치인 배경음악은, 시작과 동시에 퍼포머를 무대 안으로 불러옴으로써 퍼포먼스에 일종의 서사성을 부여하고, 때문에 이 혼란스러운 ‘다양성의 결집’안에서도 분명 시작과 끝이 존재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 음악조차 맥락 없이 계속 멈춰버리면서 오작동의 기호를 얻고, 궁극적으로 이것은 관객들에게 이 퍼포먼스의 실패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사이버 웨프트에서 퍼포머의 전반적인 동세는, 발롱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숲에서 나무 의사로 일하며 관찰하고 발전시켜온 늑대에 대한 해체적 통찰을 기반으로 한다. 늑대는 흔히 포식자, 약탈자로서 괴물로 여겨지는 여러 동물 중 하나이다. 늑대의 형태와 그 습성은 곧 ‘괴물’의 범죄적 이미지를 만드는 토대가 되었고 이는 우리에게 늑대는 곧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사회적 기호를 부여하게 만들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발롱은 늑대의 아키타이프, 즉 ‘원형’의 위치를 조명한다. 그녀에 따르면 늑대의 원형은 칼 융의 페르소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머스를 넘나드는 다리 혹은 연결선 그 어딘가에 존재한다. 때문에 늑대의 원형으로 다가가기 위해서 우리는 인간이 늑대에게 부여한 두려움을 우리 안으로 삼키고 인정하고 잠재워야만 한다. 이것은 다른 말로 우리를 늑대의 원형으로 인도함으로써, 이것이 가진 두려움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두려움의 이중성 혹은 늑대의 이중성. 우리는 바로 그 순간 괴물 이야기에 나오는 늑대가 아니라 우리 안에 언제나 존재하고 있는 바로 그 늑대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비로소 사회적 규범에서 완전히 빗겨난 우리 자신의 원형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실패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몸은 성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2022년 1월 30일 ~ 2022년 2월 4일 작성
OH! MY REMOTE TOUR #2:
Sasha Ballon, 'Cyberweft (Prelude)'
Jina Song (Sasha Ballon edit)
British Columbia, located on the Pacific coast of Canada, is covered with forests over half of its territory. Since 1896, a wolf-like monster with light brown curly fur has been discovered nine times a year, which is found only within the forests in British Columbia, named BCNT (British Columbia Nine Tails). However, once witnessed by people, the monster quickly left its place. There are no photos marking its presence and each witness has different accounts of its locations. It is difficult to define its form and gender because its appearance was described completely differently except for its light brown curly fur. Therefore, the mystery of its existence has been handed down to people like a monster in a myth.
Exactly nine times a year, and everyone who saw it said it looked like a wolf, but it was still a monster that was completely different from a wolf. It is very interesting that they are all villagers near the British Columbia forests.
When entering a forest in British Columbia, it is very common for people to find bears and wolves in the forest, to the extent that everyone must be familiar with the safety precautions. Therefore, the villagers have a realistic awareness of wolves and know exactly what wolves actually look like. But for these people, they concluded this monster was not a wolf. Its behavior and appearance were very similar, but it had a monstrous quality that left the people with a sense of dis-ease. If you walk in the forest at night, glowing eyes would appear from in the ticket. If the eyes are different coloured than the animals that usually lived there, you know the monster is in your presence.
As a human being, encountering a scientifically unproven being is very frightening. But if we find out that this being has the same habits as any animal we already know (scientifically proven), will that fear be relieved?
According to an analysis of post-emotions after witnessing this monster based on statements from people over the past 100 years, the most overwhelming emotion they felt was a lack of safety and security (or uncomfortable).’ People felt more insecurity than fear when they saw this wolf-like monster, which was very far from the normal appearance of a wolf.
Is ‘British Columbia Nine Tails’ a wolf? If we really put this monster into the wolf category in the future, this monster we are facing right now could be described as 'a bizarre form of wolf that deviates from an ideal and perfect image.’
Sasha Ballon’s (b.1996, Canada) new work ‘Cyberweft (Prelude) 2021’, summons unpleasant emotions that emerge when we are faced with a failure to meet social norms and expectations in the realm of society as a human being through ‘failed performance.’ Among them, Ballon focuses on ‘multiplicity’ of experience as she sharply explores the failure of performances through various contrasting factors.
In Cyberweft (Prelude), Ballon includes handicraft materials, non-materials in virtual space, costumes and props made of soft wool, textiles and steel, sound collected from nature and music generated from digital glitches, acrobatics that requires an absolute balance of the body, and accidental movements of falling into space. The audience raises the fundamental question of whether the performance is really successful or not with the dizzying danger of the experience unfolding almost bare body without any protective equipment on the cold and damp concrete floor.
Nevertheless, it is music that keeps the audience’s eyes on the performance. Background music, the most important induction device in Cyberweft, gives a narrative to the performance by bringing the performer into the stage at the same time as it begins, raising vague expectations that there will certainly be a beginning and end in this chaotic ‘multiplicity of movement.’ However, during the performance the sound suddenly stops without context, symbolizing a malfunction, and ultimately this plays a major role in further highlighting the failure of this performance to the audience.
The performer’s overall movement in Cyberweft is based on a deconstructive insight into wolves that Ballon has observed and developed while working as a tree surgeon in the British Columbia Forest in Canada. Wolves are one of several predatory animals that are often considered monsters and looters. The wolf’s form and habit soon became the basis for creating a criminal image of a ‘monster’, which gave us a social sign that wolves were objects of fear.
At this point, Ballon illuminates the wolf’s archetype. According to her, the wolf can exist somewhere on the bridge that crosses Jung’s Persona, Shadow, Anima, and Animus. Therefore, in order to approach the wolf’s prototype, we must swallow, acknowledge, and silence the fear that humans have given to wolves. By leading us into the forest landscape of wolves, we are completely freed from the fear it has. Duality of fear or duality of wolves.
At that very moment, we are not the wolves in the monster story, but we come to acknowledge that these wolves always exist within us.
One way or another, we always meet our shadow selves, which is completely out of social norms.
“I will fail, because, this body was not built as machine to succeed.”
-Written: 30.JAN.2022 ~ 4.FEB.2022-
Image credit: Sasha Ballon
한 달 전 즈음 인스타그램에 손글씨로 적어내려간 사샤 발롱의 사이버 웨프트 리뷰를 내 웹사이트 'review'에 아카이브 했다. 지난 미라 데이얼 원격 투어에 이어 이번 사샤의 퍼포먼스 또한 직접 보지 못했기에 본의 아니게 시리즈물처럼 정리하게 되었는데, 두 에피소드밖에 없는 짧은 아마추어 리뷰이지만 한국어 원본과 영어 번역본이 함께 들어가 있어서 다 읽는데 꽤 시간이 소요된다. 번역을 할 때 오는 묘한 어감 차이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었기 때문에 비교하며 읽으면 어떤 부분들은 내용이 사뭇 다른 느낌도 난다.
이번 사샤 발롱의 작품은 작가 본인이 실패한 퍼포먼스에 그 의의를 두었기에 나 또한 비슷한 양상을 가진 리뷰를 적고 싶었다. 손글씨를 써서 그녀의 작품과 같은 수공예적인 느낌을 내면서 자동번역을 불가능하게 하고, 하루 지난 후에 영어 번역을 올리는 식으로 일주일에 거쳐서 게재? 했다. 포스팅의 흐름이 끊기니 당연히 맥락성이 떨어지고 글의 정체성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애초에 이런 발상 자체가 그저 내 스스로가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니 이것 그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가끔 이렇게 다른 사람의 작업을 보며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만의 세계 안으로 끌어들이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 글을 웹사이트에 다시 받아 적으며 문득, 내게 어떤 작업이 상상의 여지를 준다는 것은 그 작업에 아주 예민하고 정치적인 요소들이 무수히 얽혀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이 발로하는 수많은 층위에 나라는 사람이 들어가 끼어도 전혀 낯설지 않을 때 나는 내 존재가 지닌 수많은 정치성을 여실히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애써 외면하고자 발버둥 치려는 에너지가 역설적으로 나에게 이런 모종의 발언권을 쥐여주는 것이다.
-2022년 3월 17일-
<GOOGLE TRANSLATED>
About a month ago, I put a handwritten review of Sasha Ballon's Cyberweft(Prelude) on Instagram and today I archived it in the ‘review’ category on my website. Since I haven’t seen Sasha's performance in person, following the last remote tour review of Mira Dayal, her performance was unintentionally organised in this remote tour series, and although it is a short amateur ‘review’ with only two episodes, the original Korean and English translation are all archived together so it takes a bit of time to read all of them. Since the slight difference in tone that comes when translating is left unchanged, some parts feel quite different when you read these while comparing them.
This time, Ballon put its significance on ‘failed performance’, so I also wanted to write a review with a similar quality. Through handwriting, I made it impossible to translate automatically while creating the same handicraft feeling as her work, I posted this review for a total of a week by posting a translation of the part a day after posting the review in Korean. Since the flow of posting was cut off, of course the context was poor and the identity of the text was not shown, but in the first place, I thought that this idea itself was meaningful as it was because I was just focusing on giving meaning to this action myself.
There are times when I want to bring someone’s art work into my own world, not just looking at it. As I rewritten the review on the website, I suddenly realised that when an art work gives me a space to imagine further more, it is because the work has such sensitive quality with countless political elements intertwined. I clearly feel the numerous political characteristics of my existence when I find myself not so unfamiliar within the numerous layers of the work. And the energy that I struggle to ignore is paradoxically giving me this kind of ‘right’ to speak.
-17.MAR.2022-
<Two English versions of this writing are below>
오! 나의 원격 투어 #1: 미라 데이얼의 ‘인스턴트 터널’
송진아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갤러리 엘티디(the gallery LTD)는 잼 스트릿(Gem Street)에 있는 애크미 훈제 생선 공급 회사(Acme Smoked Fish Corp.)의 맞은편, 길게 늘어진 붉은 벽돌 건물에 위치해있다. 주중에는 이른 새벽부터 저녁까지 정신없이 돌아가는 공장 겸 직판점이지만, 주말에는 문을 닫기 때문에 토요일과 일요일은 공장 바로 앞으로 앤디 워홀의 캠벨 치킨 수프를 연상시키는 애크미 회사의 빨간 트럭들이 일렬로 늘어져 장관을 이룬다. 바로 이 주말 동안 갤러리 엘티디에서 8월 8일부터 29일까지 뉴욕 기반의 영 아티스트 미라 데이얼(Mira Dayal)의 개인전, ‘인스턴트 터널 (Instant Tunnel)’이, 독립 큐레이터 린지 르보이어(Lindsay LeBoyer)의 큐레이션으로 진행되었다.
전시가 열리지 않는 주중에도 통유리 문 너머 볼 수 있었던 인스턴트 터널은 멀리서도 잘 보일 정도로 매우 큰 크기로 제작되었지만, 전시장은 거의 빈 공간에 가깝다. 입구에서부터 거대한 인스턴트 터널로 이어지는 백색 실 선만이 그 빈 공간을 가로지를 뿐이다. 하지만 천칠백 평에 달하는 맞은편 공장에서 쉴 틈 없이 뿜어져 나오는 훈제 생선 냄새는 이 반듯한 직각 구조의 작지도 크지도 않은 갤러리 엘티디를 가득 메우기에 충분했다.
이번 원격 투어의 이점은, 사진으로는 분별할 수 없던 백색 실선의 매체에 대해 자세히 보고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저 물감인 줄만 알았던 중앙선은 아주 미세한 유리 파편들로 채워져있어 실제로 보면 빛의 움직임에 따라 정신없이 반짝인다. 다소 초현실적이기까지 한 이 중앙선을 따라 올라가면, 1점 투시로 이루어진 인스턴트 터널의 소실점이 실제 터널이라는 것, 인스턴트 터널이 단순 벽화가 아닌 한 벽면 전체가 설치작업으로 구성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어린아이 손바닥이 채 안 되는 그 좁고 작은 터널 안을 들여다보면, 루니툰의 와일 E 코요태와 로드러너의 인스턴트 터널 장면이 나온다. 아! 이게 바로 그 터널이다. 와일 E 코요태가 로드러너를 잡기 위해 줄기차게 사용하던 온갖 제품들을 만들어내는 애크미 주식회사의 물감으로 만든 그 벽화 터널! 그러나 정작 로드러너는 인스턴트 터널을 마치 실제 터널인 양 통과해 버리고, 와일 E 코요태는 벽화에 그대로 코를 박아 버린다.
애크미는 영어로 Acme. 정점, 최고, 절정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루니툰의 애크미 주식회사가 애크미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미국에서 전화번호부를 통한 통신판매가 성행하던 1920년대부터 알파벳 순서로 가장 앞에 실을 수 있는 Acme 를 상호로 한 회사들이 우후죽순 늘어났던 배경에 있다.
다시 요 길 건너에 있는 애크미 훈제 생선 공급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라 데이얼의 개인전이 굳이 ‘인스턴트 터널’을 가져온 이유는 단순히 갤러리 앞 기업 이름이 와일 E 코요태가 애정 하던 주식회사의 이름과 같아서가 아니다. 1954년도에 세워져 가족경영 체제로 벌써 4대째 내려오는 이 훈제 생선 회사는 최근 확장 이전 공사 프로젝트에 장장 한국 돈 6350억 원이 훌쩍 넘는 예산이 뉴욕시 의회에서 공식 책정되면서 적잖은 구설수에 올랐다. 곧 부지 이전과 동시에 만 오천 평에 달하는 9층 건물이 추가로 올라가게 되면, 애크미는 이제 단순 훈제 생선 공급 회사를 넘어선 그 어떤 정점에 다다를 것으로 보인다.
아! 이스트 강의 전망이 탁 트인, 그린포인트의 휘황찬란 애크미 훈제 생선 복합 건물!
2021년 브루클린의 여름. 애크미의 유난히 뜨거웠던 8월의 휴일은 정신없이 반짝이는 잼(Gem: 보석) 스트릿에 미라 데이얼의 ‘인스턴트 터널’을 보러 온 관객들로 붐볐고, 우리는 모두 너 나 할 것 없이 터널의 정점(소실점)에 코를 박고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2021년 9월 4일 작성-
Image credit: Monet Lucki, Dave Cook, Lindsay LeBoyer, Looney Tunes, Brooklyn Eagle
OH! MY REMOTE TOUR #1:
Mira Dayal, 'Instant Tunnel'
Jina Song (Brandon Hendrick edit)
'the gallery LTD' in Brooklyn, New York is located in an elongated red brick building opposite Acme Smoked Fish Corp. on Gem Street. This is a frenetic factory that runs from early dawn to evening on weekdays, so on weekends a line of Acme Company's red trucks line up right in front of the factory. During the weekend, from August 8 to the 29th, New York-based young artist Mira Dayal hosted a solo exhibition, titled 'Instant Tunnel', which was curated by Lindsay LeBoyer.
The instant tunnel, which could be seen through the glass door, was made so large that it could be seen from a distance, while the rest of the exhibition hall was almost empty. The white line from the entrance to the huge instant tunnel crossed this vacant space. Meanwhile, the smell of smoked fish from across the street filled the entire gallery.
The advantage of this remote tour was that I was able to see and hear details that could not be discerned in photos. The line running through the space, which I initially thought was just paint, was actually filled with very fine glass shards which created a beautiful sparkle within the light. If you go up this somewhat surreal centerline, you will find that the instant tunnel was not a mural, but an entire installation composed on the wall.
If you look into the narrow tunnel that is smaller than a child's hand, a familiar scene appears. It is Looney Tunes' Wile E. Coyote and Road Runner's instant tunnel! The mural is made with paints from Acme Corporation, which produces all kinds of products that Wile E. Coyote uses in his attempts to catch Road Runner. However, while Road Runner passes through the instant tunnel as if it were a real tunnel, Wile E. Coyote crashes into the mural wall.
Acme carries meanings of apex, supreme, and climax. Looney Tunes' Acme Corporation got its name during the 1920s. At this time, companies with the name 'Acme' were common, as they could be placed first in alphabetical order in telephone directories.
Acme Smoked Fish Corp., which was established in 1954 (and has already been the fourth generation under the family management system), has been under considerable gossip since a budget of well over 635 billion won was officially set by the New York City Council for its recent expansion project. If the company soon relocates its site and builds an additional 532,000 square feet of the nine-story building, Acme is now expected to reach some 'acme' beyond just a smoked fish corporation.
-Written: 4.SEP.2021-
OH! MY REMOTE TOUR #1:
Mira Dayal, 'Instant Tunnel'
Jina Song (Literal translation)
'the gallery LTD' in Brooklyn, New York is located in an elongated red brick building opposite Acme Smoked Fish Corp. on Gem Street. It's a frenetic factory and direct sales store that runs from early dawn to evening on weekdays, but it's closed on weekends, so on Saturdays and Sundays, a line of Acme Company's red trucks reminiscent of Andy Warhol's Campbell Chicken Soup lined up right in front of the factory creates a spectacular scene. During that time of the weekend, from August 8 to 29 at the gallery LTD, New York-based young artist Mira Dayal's solo exhibition, 'Instant Tunnel', was curated by independent curator Lindsay LeBoyer.
The instant tunnel, which could be seen through the glass door even on weekdays when the exhibition was not held, was made so large that it could be seen from a distance, but the exhibition hall was almost empty. Only a white line from the entrance to the huge instant tunnel crossed the empty space. However, the smell of smoked fish constantly emanating from the factory opposite was enough to fill the gallery, which is neither small nor large, with a straight rectangular structure.
The advantage of this remote tour was that I was able to see and hear the details of the medium of the white line that could not be discerned in photos. The centerline, which I thought was just paint, was filled with very fine glass shards, so in reality, it sparkled frantically according to the movement of light. If you go up this somewhat surreal centerline, you will find that the vanishing point of the instant tunnel made of one-point perspective is an actual tunnel and that the instant tunnel was not a simple mural, but an entire wall composed of installation work.
If you look into the narrow and small tunnel that is less than the palm of a child's hand, Looney Tunes' Wile E Coyote and Road Runner's instant tunnel scene appear. Ah! This is that tunnel. The mural tunnel is made with paints from Acme Corporation, which produces all kinds of products that Wile E Coyote uses to catch road runners! However, the roadrunner passes through the instant tunnel as if it were a real tunnel, and Wile E Coyote only hits the mural as it is.
Acme has the meaning of apex, supreme, and climax. The background that Looney Tunes' Acme Corporation got its name was that since the 1920s, when telephony sales through telephone directories were booming in the United States, companies with the name 'Acme', which can be placed first in alphabetical order, were increasing rapidly.
Again, I have to mention the Acme Smoked Fish Corp. across the street. The reason Mira Dayal's solo exhibition brought 'Instant Tunnel' is not simply because the name of the company in front of the gallery is the same as the company Wile E Coyote loved. Acme Smoked Fish Corp., which was established in 1954 and has already been the fourth generation under the family management system, has been under considerable gossip since a budget of well over 635 billion won was officially set by the New York City Council for its recent expansion project. If the company soon relocates its site and builds an additional 532,000 square feet of the nine-story building, Acme is now expected to reach some 'acme' beyond just a smoked fish corporation.
Ah! The brilliant Acme Smoked Fish Corporation's Multi-Complex in Greenpoint, with a panoramic view of the East River!
Summer 2021 at Brooklyn. Acme's exceptionally hot August holiday was packed with spectators who came to see Mira Dayal's 'Instant Tunnel' on the frenetically sparkling Gem Street, and they all put their faces on the acme(vanishing point) of the tunnel one by one and did not move for a while.